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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생활연구원 이사장 김희진 -새국어생활(이곳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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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생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9-10 15:23 조회1,1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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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 생활의 길잡이로서 자리매김한 ≪새국어생활≫이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20년 전 ≪새국어생활≫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사람이 만들었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당시 초대 편집장을 맡아 ≪새국어생활≫의 초창기를 지켰던 김희진 국어생활연구원 이사장은 이런 질문에 가장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난 2007년 국어진흥부장을 끝으로 20년 넘게 근무했던 국립국어원을 정년퇴직했던 김희진 이사장은 퇴직 이후 사단법인 국어생활연구원(약칭 ‘국생연’)을 설립해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과 국어 진흥을 위해 애쓰고 있으며,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한글날 경축식에서 한글 발전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김희진 이사장을 만나 20년 전 태어난 ≪새국어생활≫과 초창기 국립국어원(당시는 국립국어연구원)의 모습,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국어 사랑에 대해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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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 김희진(사단법인 국어생활연구원 이사장)
질문자: 장승욱(작가)
때: 2010년 11월 18일
곳: 국어생활연구원(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장승욱: 지난 한글날 대통령 표창을 받으셨습니다.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셨습니까?

 

김희진: 고맙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상을 받으니 기뻤습니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상을 받기도 했지만, 이번이 특히 더 기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더구나 공직에서 물러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저를 기억해 주시고, 제가 그동안 해 왔던 보잘 것 없는 일을 좋게 평가해 주신 일은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이 상을, 퇴임한 후 뒷방 늙은이로 지내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북돋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슴이 설렙니다.

 

장승욱: 근황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 테니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소개해 주십시오.

 

김희진: 정년퇴임을 하던 2007년에 ‘국어생활연구원’을 만들었고, 3년간의 준비 끝에 지난 6월에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습니다. 법인 설립 과정에서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난 10월에는 법인 설립 후 첫 사업으로 세종문화회관 지하 공간(세종 이야기)에서 ‘생활 속 점자와 수화’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공무원, 교사, 문장사,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국어 강의도 했고, 교과서를 개발하고 감수하는 일도 했습니다. 또 각종 출제지나 공모작을 검토하거나 심사하기도 하면서 좀 바쁘게 지냈습니다.

 

장승욱: ‘국어생활연구원’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김희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과 국어 진흥에 이바지하는 것이 국생연의 설립 목적입니다. 이 ‘국민’에는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공무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 개발, 한국어 보급 관련 취업 프로그램 개발, 국어 표현·표기 등의 감수, (한)국어 진흥 정책과 제도 연구, (한)국어 사용 실태 조사·연구, 남북한 언어의 통합을 위한 연구와 교류 촉진, 국가와 지방 정부 및 어문 관련 단체의 위탁 사업 수행 등을 하려고 합니다.

 

장승욱: 10여 년 동안 교편을 잡고 계시다가 1986년에 국어연구소에 들어가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김희진: 초등학교, 중등학교 교사로 14년 반을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건국대 공과대학 교수였던 남편이 미국에 1년간 교환 교수로 가게 되어 온 가족이 함께 떠나면서 저도 교사 생활을 접었습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간 것이 제가 국어연구소와 인연을 맺게 된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년 만에 미국에서 돌아왔고, 그다음 해에 숙명여대 국문과 박사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의미론 분야에서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기신 이을환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박사 과정을 밟던 중에 운 좋게도 국어연구소 연구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그해가 1986년입니다. 당시 소장이셨던 김형규 선생님은 제가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할 때 방언론을 강의하셨던 분입니다.

 

장승욱: 초창기 국어연구소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인원도 그렇고, 규모도 그렇고 지금의 국립국어원과 비교하면 ‘금석지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땠습니까?

 

김희진: 국어연구소의 전 직원이 한가족 같았습니다. 구성원을 보면, 소장 한 명, 연구원 일곱 명, 조사원 여섯 명, 서무과장 한 명, 사무원 두 명, 모두 열일곱 명입니다. 사무실 공간도 국어원의 기획관리과의 방 정도나 될까요? 당시 수행한 사업은 총 아홉 가지였습니다. ‘교육용 기초 어휘 선정’, ‘한자 및 한자어 사용 실태 조사 연구’, ‘외래어 사용 실태 조사 연구’, ‘북한 언어 연구’, ≪국어생활≫ 발간, ‘표준어 개정안 연구 검토’, ‘맞춤법 개정안 연구 검토’, ‘외래어 표기법 용례집 검토’, ‘연구 논문집 발간’입니다. 빈도나 순위를 낼 때에도 수작업으로 작성한 카드를 일일이 헤아리는 식으로 하였습니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이었으니까요. 지금과는 참으로 다른 모습이었지요.

 

장승욱: 국어연구소 시절부터 시작해서 국립국어원이 되기까지 20년 넘게 근무를 하셨는데, 주로 어떤 분야의 일을 맡아서 하셨는지요?

 

김희진: 국어연구소나 국립국어원의 설립 목적이 국어 생활의 향상과 국어 정책 개발의 토대 마련이니까 거기에 맞는 여러 가지 사업을 받았지요. 제가 한 일을 어문 연구 활동과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실태 연구로 둘로 나눠 보겠습니다.
어문 연구 활동으로는 국어연구소 시절에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의 개정을 마무리한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는 1971년부터 시작하여 17년간 이어 오며 여러 기관의 검토를 거쳤던 사업이었습니다. 국어원 시절에는, 어문 규정을 집대성하여 보급한 일, 교과서 문장과 법률 문장을 검토하고 다듬는 일을 하였습니다.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 국어 실태 연구로는 국어문화학교를 세워 운영한 일, ≪새국어생활≫과 ≪새국어소식≫을 발간한 일, ‘국어 능력 인증 시험’을 감수하고 공무원 선발 고시 출제와 윤문에 참여한 일, 소외 계층 언어, 특히 점자와 수화를 표준화한 일, 언어 사용 실태를 조사하여 한자, 기본 외래어, 남북한 외래어, 약어, 연설문 등과 관련한 보고서를 낸 일을 꼽을 수 있습니다. 또 ‘훈민정음 서문가’를 공모하여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중간 관리자로서는 위 사업 외에 한국어 교육, 순화 등의 연구 사업과, 기관의 발전을 위한 여러 활동도 하였습니다.

장승욱: 많은 일을 하셨는데, 그중에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김희진: 국어문화학교 운영입니다. 1991년 첫해는 사전 연구를 했고 이듬해인 1992년 5월에 문을 열었는데 홍보 전단지도 제가 직접 만들어 외판원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나눠 주었습니다. 여기 제1기 전단지가 있군요.
…… 이번 봄에 국립국어연구원 문화학교를 엽니다. 바른 국어 생활을 원하시면 ‘국어반’에, 번역에 관해 알고 싶으시면 ‘번역반’에 오십시오. 작으나마 오붓한 배움터에서 여러분을 맞이하겠습니다. [초창기에는 국어반 말고도 번역반, 청소년반도 있었음.-편집자 주] 정성을 기울인 만큼 성과도 나타났습니다. 언론에서도 몇 차례에 걸쳐 보도할 만큼 주목을 받았습니다.(1999년 12월 1일 자 ○○ 신문 자료) ‘바른 우리말 강좌 공무원에 호평-국립국어연구원 문화학교 수강 신청 26 대 1 경쟁 기록’ 그때가 생각납니다. 제38기 40명 모집에 1,045명이 지원했지요. 마감 후, 수료증은 안 주어도 좋으니 청강생으로라도 듣게 해 달라며 간청한 수십 명도 닷새간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공무원과 교사의 학구열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사업비였습니다. 1999년까지만 해도 ‘국어문화학교 운영’ 1년 사업비가 500만원 남짓했습니다. 수강생이 늘어나면 소요 경비도 늘어나는데 아무리 한 푼 한 푼을 아껴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런 고충을 기획예산처 담당자에게 호소하며, 외진 곳이든 외딴 섬이든 부르기만 하면 달려가는 ‘찾아가는 국어문화학교’를 열겠으니 운영비를 증액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결과 전년 대비 1,000퍼센트가 넘는 6,000만 원의 예산을 받았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증액이었습니다. 국어문화학교는 이 같은 기획예산처의 아낌없는 지원과 후임 사업 담당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나날이 발전하여, 제237기를 이번 주에 마치는 현재, 공무원과 교사의 ‘참여하고 싶은 교육 프로그램’의 첫 손가락에 꼽힌다고 합니다. 생면부지의 저를 믿고 거액의 나랏돈을 선뜻 지원해 주신 성일홍 님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장승욱: ≪새국어생활≫이 창간 20년을 맞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새국어생활≫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언제였습니까?

 

김희진: 1991년 1월 국립국어연구원 간판을 달고 나서 업무를 나눌 때 제게 온 일입니다. ‘한자 사용 실태 조사’와 ‘국어문화학교 운영’도 동시에 맡았습니다. 국어연구소 시절엔 당시 기관지인 ≪국어생활≫에 어문 규정과 관련한 원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국어생활≫과 ≪새국어생활≫ 발간의 주목적은 학계에서 이룩한 연구 성과를 알기 쉽게 풀어서 일반 국민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장승욱: 그러니까 초대 편집장이셨던 건가요?

 

김희진: 편집장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제 손을 거쳐야 했습니다. 편집위원회에서 특집을 비롯한 내용과 필자를 정하면 그에 따라 집필을 의뢰하여 원고를 받고 이를 정리합니다. 인쇄에 넘겨 서너 차례에 걸쳐 교정․교열을 하고 편집도 합니다. 책이 나온 후에도 발송하는 일까지 혼자 해야 했습니다. 또 집필을 의뢰한다고 원고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잖습니까. 필자에게 연락이 잘 안 될 때는 결례를 무릅쓰고 한밤중에 전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전자 우편을 활용하는 때가 아니어서 직접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컴퓨터 파일을 이용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200자 원고지에 직접 쓴 원고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인쇄도 활판 식자(植字) 작업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번거로움도 많았습니다.

 

장승욱: 고생하신 만큼 재미있는 일화나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김희진: 재미있는 일도 많았죠. ≪새국어생활≫ 창간호 특집이 ‘한국인의 이름’이었습니다. 내용을 충실히 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재미있고 읽을 맛이 나야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편집 위원의 의견을 존중하여 성명학 하는 분에게 원고를 청탁해서 특집에 실었습니다. 김백만 님의 ‘성명학에 대한 인식’이라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런 이름을 썼기 때문에 죽거나 실패했고, 또 저런 이름을 썼기 때문에 살거나 성공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 아주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책이 배포된 후 필자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전화가 쇄도해서 한동안 진땀을 뺀 적이 있습니다. 연구원들은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 없었지만, 그분은 아주 신 났을 겁니다.
제가 칭찬받은 일도 생각납니다. 1991년 겨울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동양 삼국의 언어 정책에 관한 국제 학술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때 논문집을 제가 맡아서 만들었는데, 토론자로 참석하신 성백인 선생님께서 “책을 볼 때 오자(誤字)를 찾아내는 게 내 취미인데 이번 논문집에서는 오자를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며 공개적으로 저를 칭찬하셨습니다. 책이 나올 때까지 눈물이 날 만큼 고생했는데, 그 칭찬 한마디에 고생했다는 느낌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장승욱: ≪새국어생활≫이 20년 동안 발간되면서 거둔 성과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희진: 우선 국어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깊이 심어 주었다는 겁니다. 이 일을 위해 국민의 언어 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여러 분야에 걸쳐 소개하였습니다. 제가 퇴임 1년을 앞두고 특집을 포함해 ≪새국어생활≫의 목차를 전부 뽑아서 분류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골고루 다뤘더군요. 언어 정책과 제도, (한)국어 교육과 국어 능력, 단어/사전 편찬학, 문자와 표기, 방언과 사회 언어학에 걸쳐 있습니다. 그 밖에 미디어, 언어와 문학, 국어학 인물, 한국어 교육자도 꾸준히 다루었습니다. 한글의 기계화나 자판 문제처럼 다른 데서는 다루기 어려운 것까지 다뤘다는 점도 돋보였습니다. 책이 60권이 넘으니 주제별로 모아 단행본을 낼 정도가 된 분야도 여럿 있었습니다. 2007년 10월 제가 엮어 국립국어원 이름으로 낸 ‘방언 이야기’라는 책이 한 예가 됩니다.
또 하나 부수적인 성과가 있다면 기관 이름을 널리 알렸다는 겁니다. 설립 초기에는 전화 건 사람이 “거기 국어학 연구소죠?”, “거기 한글연구소죠?” 하는 식으로 부르는 이름이 스무 가지가 넘었습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국립국어원이라는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똑바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새국어생활≫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장승욱: 거쳐 가신 필진도 대단한 분들이셨지요?

 

김희진: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필자 대부분이 국어학계의 태두, 중진이셨지요. 그렇지만 필자가 아무리 뛰어나고 능력이 있더라도 한 번 쓰신 분께는 최소 1년 동안은 다시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예외가 없었을 겁니다. 물론 통계를 내면 어떤 분은 여러 차례 쓰고 어떤 분은 한두 번만 쓰고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요. 많은 분이 ≪새국어생활≫에 글이 실리는 것을 영광스러워했습니다. 필자로 선정해 줘서 고맙다며 제게 인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장승욱: 저는 매번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앞으로는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하겠습니다.

김희진: (웃음) 네,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장승욱: ≪새국어생활≫이 앞으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희진: ≪새국어생활≫이 국어학의 학적 성과를 알기 쉽게 국민에게 알리는 구실을 하는 건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제 후임들 덕택에 완성도가 높아지고 폭도 넓어졌습니다. ‘언어 정책과 제도’ 하나만 보더라도 초기에는 ‘국어 진흥 정책과 제도’, ‘어문 규정 정책’ 등을 많이 다루었는데 최근에는 ‘소외 계층의 언어 실태와 언어 정책(2006 봄호)’, ‘다문화 사회와 한국어(2008 봄호)’, ‘장애인 언어 복지 정책의 현황과 과제(2010 여름호)’로, 소외되기 쉬운 계층을 대상으로 심층 연구를 하면서 외연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어 발전 기본 계획(2007 여름호)’같이 미래상을 다룬 특집도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점점 큰 그림을 그려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승욱: 제목이 말해 주는 것처럼 ≪새국어생활≫이 다루는 것은 어차피 우리의 ‘국어 생활’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국어 생활’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또 제대로 된 ‘국어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소의 생각을 들려주십시오.

 

김희진: ‘국어 생활의 문제’하면 우선 어떤 말이 맞느냐를 두고 그 언저리에서 맴도는 예를 주변에서 흔히 봅니다. 물론 그런 일도 필요하겠지만 근원적으로는 국어가 국어로서의 기능을 다하게 하는 것, 인간 간에 이해하고 납득하고 공감하게 하는 말의 몫을 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어 생활’의 ‘생활’을 저는 ‘생기와 활기’라고 생각합니다. 국어가 생기와 활기를 띠도록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늘 싱싱하게 펄떡펄떡 뛰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국어는 인간 생활을 다사롭게 하고 창조적인 생활로 연결해 주는 다리 구실을 해야 합니다. 소통과 나눔의 도구로서의 몫을 다하면서 문화 창조와 문화 창달로 이끌 때 말의 존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국어생활≫도 다양한 주제를 통하여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장승욱: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희진: 제 여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법인을 허가해 준 대한민국 정부가 제게 보내 준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리고 법인을 설립하기까지 아낌없이 도와준 많은 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겠지요. 각종 교육 프로그램 개발, 국어 표현·표기 등의 감수 등 앞에서 말씀드린 일들을 할 계획입니다. 또한 국생연 지부(支部) 열다섯 곳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국민의 눈높이와 보폭에 맞추어 국어 사용 능력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에 힘쓰고 싶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문화 창조 역량을 키우는 데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장승욱: 끝으로 ≪새국어생활≫ 창간 20주년을 맞아 축하의 말씀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희진: ≪새국어생활≫은 기관지이면서도 국어 생활의 길잡이 구실을 해 왔습니다. 처음부터 인기가 대단했고, 지금도 역시 인기가 높아서, 각계각층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책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주 큰 일을 해 왔고, 앞으로 더욱 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년 동안 아주 우람하고 믿음직한 거목으로 키워 주신 ≪새국어생활≫의 관계자와 독자 여러 분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다시 한 번 창간 20주년을 축하합니다.

 

장승욱: 선생님께는 정든 고향과 같을 텐데, 국립국어원에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희진: 국어연구소, 국립국어연구원, 국립국어원이 이 땅에 출현한 것은 대단한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 왔고, 기관장에서부터 중간 관리자, 일반 연구원, 행정직 직원에 이르기까지 다 몫몫의 일을 정말 성실하게 수행해 왔습니다.
국립국어원이 개원 20주년 기념으로 언어 정책에 관한 국제 학술 대회를 12월에 연다고 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태국, 이집트, 독일, 프랑스의 언어 정책을 소개하고 ‘21세기의 언어, 문화와 창조의 힘’, ‘세계의 언어정책의 성과와 기준’이라는 기조연설도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한국의 언어 정책을 세계의 언어 정책 흐름 속에서 수립하고 펼쳐 나가며 때로는 시대를 앞서 읽어 가는 모습을 계속 보여 주었으면 합니다. 개원 20주년, 축하합니다. 개원 200주년, 2,000주년은 우리 후손들이 맞이하겠지요.

 

장승욱: 오랜 시간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국어생활연구원과 더불어 앞으로 국어 생활에 도움이 될 일을 많이 하시게 되기를 빕니다.

 

김희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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