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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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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생연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5-09 16:52 조회5,2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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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정희원(국립국어원)

1. ‘로마자 표기법’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한국어’를 공용어로 말하고, 고유 문자인 ‘한글’로 문자 생활을 한다. 따라서 한국어와 한글만 규칙에 따라 잘 사용하면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전혀 불편이 없다. 그러나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외국을 방문하려면 여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에 우리는 ‘김민수’라는 이름을 Kim Minsu 등으로 적어야 하고,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을 위해 관광 안내문이나 도로 표지판에 ‘부산, 광주’를 Busan, Gwangju 등으로 적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말을 한글이 아닌 로마자로 표기하기 위한 규칙이 바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영어 표기, 또는 영문 표기라고 알고 있는 것의 공식 명칭이 ‘로마자 표기법’인 것이다.
  그런데 흔히 말하듯 ‘영문 표기법’이 아니라 ‘로마자 표기법’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마자’는 우리가 영어 알파벳이라고 알고 있는 ‘a, b, c, d,……x, y, z’의 공식 명칭이다. 이 글자들은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등의 유럽 언어들은 물론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터키어 등 세계 여러 언어를 표기하는 데에 사용된다. 한편 우리가 ‘설악산, 제주’ 등을 ‘Seoraksan, Jeju’ 등으로 적는 것은 영어나 독일어 등 특정한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자인 ‘한글’로 적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로마자’로 적는 것이므로 ‘로마자 표기법’이 바른 명칭이 된다.
  이런 혼란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개 언어와 문자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한국어를 말하고 한국어는 한글로 표기되므로, 두 가지 개념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아도 소통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예를 들어 물밀듯이 들어오는 영어에 맞서 ‘한글’을 더욱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 표현에서 ‘한글’은 ‘한국어’로 바꾸어야 정확한 말이 되지만 말하는 이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한국어와 한글은 각각 언어와 문자를 지시하는 각기 다른 표현이므로 잘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것은 40개에 달하는 우리말의 소리를 26개로 제한되어 있는 로마자를 이용해서 표현해 내는 것이다. 로마자 중에서도 ‘f, v, q, x, z’ 등은 우리말 소리를 적기에 적당치 않고, ‘r’과 ‘l’은 성격이 비슷하여 똑같이 ‘ㄹ’ 소리를 적는 데에 사용하게 되므로, 실제로는 40개의 소리를 19개의 문자를 이용해서 적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말의 모음은 단모음만 해도 ‘ㅏ, ㅐ, ㅓ, ㅔ, ㅗ, ㅚ, ㅜ, ㅟ, ㅡ, ㅣ’ 등 10개나 되는데, 로마자에는 모음을 표기하는 글자가 ‘a, e, i, o, u’ 의 다섯 개밖에 되지 않아 규칙을 마련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러한 한계 탓에 우리말의 특징을 잘 나타내면서도 로마자 사용자들이 쉽게 알 수 있는 완벽한 표기법을 만들어 내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동안 제한된 범위에서 가장 실용적인 표기법 체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여러 가지 표기법이 고안되어 왔으나 각각의 표기법 체계는 배경에 따라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그중 어느 하나만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로마자 표기법을 만들 때 우리말의 소리가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에 중점을 둘 것인지 아니면 우리말의 구별되는 소리를 구분해서 표기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다른 표기법 체계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배경 지식을 가지고 제2장에서는 우리말 로마자 표기법이 그동안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쳐 왔는지 살펴보고, 제3장에서는 2000년에 개정된 현행 ‘로마자 표기법’의 개정 배경과 원리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변천 과정

  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하려는 노력은 우리나라가 서양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1800년대 후반을 전후하여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로마자 표기법에 관심을 가져, 발표된 표기법 체계만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여기에서는 여러 표기법안 중에 몇몇 주요 표기법 체계의 내용을 서로 비교하여 검토해 볼 것이다. 사실 로마자 표기법 체계에서 쟁점이 되어 왔던 것은 몇 가지 문제에 집중된다. 즉 (1)로마자 표기를 우리말의 맞춤법에 따라서 할 것인지 아니면 발음에 따라서 할 것인지의 문제와  (2)로마자에 없는 우리말 모음 /ㅓ, ㅡ, ㅐ/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지의 문제, (3) 자음 체계에서 파열음과 파찰음의 표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가 주로 논의되어 왔다.
  여기에서는 1939년 미국인 매큔(McCune)과 라이샤워(Reischauer)가 고안하여 지금까지도 외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매큔-라이샤워안(‘MR안’으로 약칭)’과, 우리나라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정해 사용한 공식 표기법을 중심으로 로마자 표기법의 큰 흐름을 살펴보겠다.

  (1) ‘엠아르(MR) 표기법’(1939)
-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장으로 재직한 미국인 선교사 매큔과 당시 하버드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사를 전공하던 라이샤워가 국내외 학자들의 협조를 얻어서 제정함.
- 1939년 발표 이후 오늘날까지 영어권에서는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음.
- 가장 큰 특징은 우리말의 소리를 영어 사용자의 귀에 들리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적는다는 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구분하지 못하는 자음의 유성음과 무성음을 구분하여 적으며, 반대로 우리말에서 구분되는 소리들은 특수 부호를 사용하여 구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생략이 가능하도록 함.
- 자음 표기: k,g(ㄱ)/k'(ㅋ)/kk(ㄲ)
- 모음 표기: ŏ(ㅓ)/ŭ(ㅡ)/ㅐ(ae)
- 주요 용례: 제주 Cheju, 전주 Chŏnju, 속리산 Songnisan

  (2) ‘한글을 로마자로 적는 법’(문교부, 1948)
- 정부 수립 후 문교부 학술연구위원회를 중심으로 제정하여 고시한 우리나라 최초의 정부안. MR안과 매우 비슷한 내용으로 1959년 개정안이 나오기까지 10여 년간 한국 정부의 공식안으로 사용됨. 철자와 소리의 절충적인 표기 원칙을 채택함.
- 자음 표기: k(ㄱ)/kh,k'(ㅋ)/gg(ㄲ)
- 모음 표기: ŏ(ㅓ)/ŭ(ㅡ)/ㅐ(ai)
- 주요 용례: 제주 Chechu, 전주 Chŏnchu, 속리산 Sokrisan

  (3)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문교부, 1959)
- 1948년 문교부안이 정부의 공식적 표기법 지위에 있는데도 널리 사용되지 않아 정부가 두 번째로 제정한 공식 표기법. ‘한글 맞춤법’ 철자에 따라 로마자를 배당하는 ‘전자법’ 원칙을 채택함.
- 일반의 호응을 널리 얻지 못하고 교과서나 정부 간행물, 지도 등에만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미군 등 외국 기관이나 영어 신문 등에서는 매큔-라이샤워 체계가 여전히 사용됨.
- 자음 표기: g(ㄱ)/k(ㅋ)/gg(ㄲ)
- 모음 표기: eo(ㅓ)/eu(ㅡ)/ㅐ(ae)
- 주요 용례: 제주 Jeju, 전주 Jeonju, 속리산 Sogrisan

  (4)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문교부, 1984)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를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낯선 기존 표기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여, MR안과 거의 유사한 새 표기법을 제정하여 고시함.
- 자음 표기: k,g(ㄱ)/k'(ㅋ)/kk(ㄲ)
- 모음 표기: ŏ(ㅓ)/ŭ(ㅡ)/ㅐ(ae)
- 주요 용례: 제주 Cheju, 전주 Chŏnju, 속리산 Songnisan
 
  (5)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문화부, 2000)
- 1990년 문화부가 설치되어 국어 정책을 문교부로부터 이관받아, ‘로마자 표기법’의 개정을 검토함. MR안과 유사한 1984년 체계는 특수 부호를 사용해서 우리말의 주요한 특질을 변별하게 하고 있으나, 특수 부호는 입력과 검색에 어려움이 있어 흔히 생략하게 됨. 결과적으로 우리말에서 꼭 구별해 써야 할 소리들이 구분되지 않아 일반인들이 사용을 꺼리게 됨에 따라 재개정 요구가 생겨남.
- 특수 부호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여 각 철자의 표기는 1959년 문교부안과 유사하게 되었으나, 철자가 아닌 우리말 발음에 따라 표기하는 ‘표음법’ 원칙을 채택함.
- 자음 표기: g(ㄱ)/k(ㅋ)/kk(ㄲ)
- 모음 표기: eo(ㅓ)/eu(ㅡ)/ㅐ(ae)
- 주요 용례: 제주 Jeju, 전주 Jeonju, 속리산 Songnisan


3.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특징

3.1. 표기법 개정의 이유
  2000년 7월 많은 논란 끝에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되어 고시되었다. 이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근간으로 하는 종전 ‘로마자 표기법’이 고시된 지 16년 만의 일이다. 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표기법 개정이 잦다는 지적과,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표기법을 개정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도 개정을 하게 된 것은 종전의 규정은 우리말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체계로서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면 오히려 로마자 표기의 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1984년에 개정되어 2000년까지 사용된 종전 ‘로마자 표기법’은 특히 다음 두 가지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첫째는 정보화 시대에 맞지 않는 특수 부호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반달표( ˘ )와 어깻점( ’ ) 같은 특수 부호는 컴퓨터에서 입력하거나 검색하기가 불편하여 사람들이 사용을 꺼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특수 부호를 생략하고 나면 우리말의 중요한 대립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로마자 표기의 혼란을 초래하였다. 예를 들어 ‘청주’와  ‘정주’는 각각 Ch'ŏngju, Chŏngju로 적는데, 특수 부호인 ’을 생략하면 두 도시의 이름이 구분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신촌’과 ‘신천’은 Shinch'on, Shinch'ŏn으로 적는데, 여기에서도 반달표를 생략하게 되면 차이가 없어져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빚게 된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말에서 구분되지 않는 자음의 유․무성을 구분하여 표기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키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대구’는 Taegu로 적지만 ‘동대구’는 Tongdaegu로 적도록 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무성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므로 같은 ‘ㄷ’을 t와 d로 달리 적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2000년의 표기법 개정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3.2. 표기의 기본 원칙
  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라’를 Sinla처럼 한글 표기 그대로 로마자로 옮겨 적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리 나는 대로 Silla라고 적는 것이다. 한글 표기 그대로 적는 것을 ‘전자법(轉字法)’이라고 하고, 발음에 따라 적는 것을 ‘표음법(表音法)’ 또는 ‘전사법(轉寫法)’이라고 한다.
  이들에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전자법은 한글로 적은 것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기면 되므로 쓰기 쉽고 로마자 표기를 다시 한글로 복원하기도 쉽다. 그러나 발음을 비슷하게 유도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속리산’을 Soglisan으로 적으면 [송니산]이라고 제대로 발음하기 어렵다. 
  반면에 표음법은 우리말을 모르는 사람들도 읽기가 쉽다. Songnisan이라고 적으면 [송니산]에 매우 가깝게 발음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원래 국어 철자의 모습을 알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소리대로 적은 Silla만으로는 원래의 한글 표기가 ‘신라’인지 ‘실라’인지 알 수 없다.
  새 표기법에서는 로마자 표기의 일반적인 목적이 인명, 지명, 상호 등 주로 고유 명사를 표기하는 데에 있다고 보아, 외국인들이 읽기에 편리하도록 표음법 방식을 택하였다. 따라서 ‘국어의 로마자 표기는 ‘표준 발음법’에 따라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제1장 제1항)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부득이 전자법 방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외국 도서관에서 우리말로 된 서적의 목록을 만들거나 언어학자들이 외국어로 우리말에 대한 논문을 쓰는 경우에는 ‘한글 맞춤법’에 따른 로마자 표기가 필요하다. 종전의 표기법은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따로 전자법 체계를 마련해 두지 않았다. 따라서 사람마다 각기 다른 체계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개정된 표기법에서는 이러한 경우에도 표준적인 방법을 따를 수 있도록 전자법 체계를 따로 마련하여 고시하였다. (제3장 제8항 참조) 이런 경우에도 불필요한 혼동을 막기 위해 글자 배당은 표음법에 따른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새 표기법의 두 번째 기본 원칙은 ‘로마자 이외의 부호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이다. 종전 표기법은 ‘어, 으’를 ŏ, ŭ로, ‘ㅋ, ㅌ, ㅍ, ㅊ’을 k’, t’, p’, ch’로 적는 등 반달표와 ( ˘ )와 어깻점( ’ )이라는 특수 부호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제한된 로마자만으로 국어의 소리를 다 표기할 수 없어서 고안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부호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고 타자하기에 매우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종전 표기법에서는 이러한 부호들을 의미의 혼동을 초래하지 않을 경우에 생략이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특수 기호를 생략해 버리면 우리말의 중요한 음운적 대립을 나타낼 수 없게 된다. 즉 ‘어’와 ‘오’가 모두 o로 표기되고, 평음(ㄱ, ㄷ, ㅂ, ㅈ)과 격음(ㅋ, ㅌ, ㅍ, ㅊ)이 모두 k, t, p, ch가 되어 로마자로는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 결과 ‘영숙’과 ‘용숙’은 모두 Yongsuk이, ‘정주’와 ‘청주’는 모두 Chongju가 되어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단점은 우리 국민이나 외국인 모두에게 불편을 주었고, 결국 표기법을 유명무실하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새 표기법은 특수 부호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로마자 스물여섯 자만으로 표기하도록 하였다.
3.3. 모음의 표기
  모음 중에 종전 표기법과 달라진 것은 ‘어, 으, 의’ 세 가지이다. 이 중 ‘어’와 ‘으’는 종전 표기법에서는 ŏ, ŭ로 표기하던 것인데, 특수 부호를 없애기로 한 기본 원칙에 따라 eo와 eu로 쓰게 되었다.
  표기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는 특히 ‘어’의 표기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ŏ의 대안으로 o’, e, u, eo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였다. ‘어’의 표기를 eo로 정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o’를 쓰자는 방안은 어깻점( ’ )은 반달표( ˘ )와는 달리 자판에 있는 기호이고, 영어 등 서양 언어에서 많이 사용하는 부호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덜할 것이라는 이유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 기호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고, 로마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로 거부감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이 있어 제외되었다.
  관습적인 표기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를 u로 적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영어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의 이름을 Samsung, Hyundai로 적는 것에서 쉽게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에 근거를 두고 ‘어’를 u로 적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하였다. 그러나 영어 외에는 u를 ‘어’로 읽는 언어가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로마자를 사용하는 다른 어떤 언어에서도 u는 ‘어’ 비슷한 소리로 발음되지 않는다. 영어에서도 u가 항상 ‘어’로 소리 나지는 않으며, 영어 화자들도 영어 단어가 아닌, 외국의 고유 명사를 읽을 때에는 u를 ‘우’로 읽는 경향이 있다. 또한 u를 ‘어’에 배당하고 나면 ‘우’를 적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도 이 방안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어’에 e를 쓰는 방법은 언어학자들이 논문을 쓸 때 많이 사용해 온 것으로 개정 시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매우 강력한 대안으로 고려되었다. 그러나 e는 일반적으로 ‘에’의 음가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어’를 e로 적게 되면, ‘에’를 ei나 ey로 적어야 하는데, 이것도 일반의 호응을 얻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e와 u는 국제적인 관례에 따라 a, e, i, o, u를 ‘아, 에, 이, 오, 우’에 고정하기로 함으로써, 그리고 o’는 ŏ와 마찬가지로 특수 부호를 쓴다는 점에서 채택되지 못하였다. 결국 eo가 ‘어’의 표기로 선택되었다.

거문도 Geomundo    버티고개 Beorimigijae    용머리 Yongmeori
  그러나 eo도 만족스러운 방법은 아니다. eo의 단점은 ‘어’ 발음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것과, 우리말에서 매우 빈도가 높은 단모음에 로마자 두 자를 대응시킴으로써 시각적으로 저항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음 문제는 따로 교육과 홍보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어떤 기호를 쓰더라도 우리말의 발음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비슷한 발음을 유도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외국인이 배우지 않고도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표기란 사실상 있을 수 없으므로, 비록 잘못 발음될 소지가 큰 표기라고 하더라도 외국인에게 그 발음을 바로 알려 줌으로써 바른 발음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eo가 가진 장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하다는 것이다. 1959년부터 1983년까지 정부의 공식 표기법이었던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에서 ‘어’에 대한 표기로 사용된 적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익숙하게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표기법 개정을 앞두고 언어학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어’의 표기에 eo를 쓰자는 의견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결국 빈도가 높은 모음에 두 글자를 배당하는 것이 비경제적이긴 하지만, a, e, i, o, u를 ‘아, 에, 이, 오, 우’에 고정하고, 또 특수 부호를 쓰지 않는다면 ‘어’를 표기할 대안이 없으므로 eo가 채택되었다.

  ‘으’의 표기는 ‘어’에 맞추어 eu로 하였다. ‘으’에 u’를 쓰는 것은 특수 부호를 쓰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 맞지 않고, u를 쓰면 ‘우’를 적을 마땅한 방법이 없어 eu로 하게 되었다.

  능라도 Neungnado  무등산 Mudeungsan    울릉 Ulleung

  ‘의’는 ‘으+이’의 구성이므로 이론적으로는 eui로 하는 것이 체계적이나, 하나의 모음을 세 개의 기호로 표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번거롭게 생각되어 ui로 단순화하였다. ‘의’의 로마자 표기에 대해서는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즉 ‘의’는 발음과 관계없이 항상 ui로만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준 발음법’에 따르면 자음을 첫소리로 가지고 있는 음절의 ‘의’는 [이]로 발음해야 한다. 따라서 ‘희’는 항상 [히]로 발음된다. 그러나 ‘로마자 표기법’에서는 ‘의’가 [이]로 소리 나는 경우에도, 표준 발음대로 표기하지 않고 철자를 따라 ui로 적도록 하였다. ‘표준 발음법’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희’를 hi로 표기하는 것을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예외를 인정하였다. 

광희문 Gwanghuimun 돈의문 Donuimun

  ‘위’는 종전 표기법과 마찬가지로 wi로 표기한다. 그러나 종전 표기법(1984)에서는 이중 모음으로 분류되었던 것을 ‘표준 발음법’(1988)에 따라 단모음으로 처리하였다. 단모음인 ‘위’를 이중 모음인 ‘와, 왜, 워, 웨’처럼 w와 모음의 결합으로 표기하는 방식이 적합하지 않은 면도 있다. 그러나 wi로 적던 종전의 표기 관습을 존중하여 그대로 둔 것이다.

    선바위 Seonbawi    서귀포 Seogwipo  영취산 Yeongchwisan

3.4. 자음의 표기
  새 표기법에서는 종전 표기법과 달리 ‘ㄱ, ㄷ, ㅂ, ㅈ’을 g, d, b, j로 적도록 하였다. 

광주  Gwangju   대구 Daegu 부산 Busan 전주 Jeonju

  종전 표기법은 ‘ㄱ, ㄷ, ㅂ, ㅈ’을 단어 첫머리에서는 이들이 무성음으로 발음되는 점을 반영하여 k, t, p, ch로 적고, 유성음 환경에서는 g, d, b, j로 적었다. 이것은 유성음과 무성음을 구분하는 외국인에게는 매우 편리한 방식이다. 왜냐하면 영어 등 외국어에서는 유성음과 무성음이 dip과 tip처럼 의미를 구분해 주는 별개의 음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어에서는 이 둘이 의미를 가르는 음운이 아니어서, 한국인들은 둘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감기’를 예로 들면, ‘감’의 ‘ㄱ’은 무성음, ‘기’의 ‘ㄱ’은 유성음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둘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같은 소리로 인식한다. 따라서 유성음과 무성음을 나누어 적는 방식은 한국인에게는 대단히 어려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Cheju)’에서 두 ‘ㅈ’이 ch와 j로 달리 표기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새 표기법에서는 평음 ‘ㄱ, ㄷ, ㅂ, ㅈ’을 모음 앞에서는 모두 g, d, b, j로 통일하여 표기함으로써 이런 불편을 없앴다.
  다만, 음절 끝에서는 이들이 달리 인식되므로 k, t, p로 적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적는 까닭은 우리말에서 ‘ㄱ, ㄷ, ㅂ’이 모음 앞에서는 숨을 파열하면서 발음되지만 어말이나 자음 앞에서는 숨을 터뜨리지 않고 내파음으로 실현되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밥’을 예로 들면, 같은 ‘ㅂ’이지만 모음 앞에서는 숨을 터뜨려 소리 내고, 음절 끝인 받침에 있는 ‘ㅂ’은 숨을 터뜨리지 않고 소리 낸다. 한국인들은 이 차이를 인식하여 bap처럼 서로 다르게 적는 경향이 있다.
  자음을 표기할 때 유․무성의 차이는 반영하지 않으면서 받침이나 어말의 소리는 따로 구분하여 k, t, p로 적는 것은, 전자는 언중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반면 후자의 차이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에 ‘ㄱ, ㅂ’ 받침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대체로 k, p로 적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체계적인 표기를 한다고 굳이 받침의 ‘ㄱ, ㄷ, ㅂ’을 g, d, b로 적기로 하면 오히려 표기법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ㅈ’과 ‘ㅅ’ 받침은 음절 끝에서 ‘ㄷ’ 소리로 변하므로 별도의 규정이 필요 없다.

옥천 Okcheon 합덕 Hapdeok 호법 Hobeop
월곶[월곧] Wolgot 벚꽃[벋꼳] beotkkot 한밭[한받] Hanbat

  ‘ㄱ, ㄷ, ㅂ’ 외에 ‘ㄹ’도 음운 환경에 따라 r과 l로 나누어 적는다. 즉 ‘ㄹ’은 모음 앞에서는 r로,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l로, ‘ㄹㄹ’일 때에는 ll로 적도록 하였다. 이것은 ‘ㄹ’이 어두와 어말에서 각기 다른 소리로 실현되며, 또 언중이 이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랄’을 예로 들면 모음 앞에 놓인 ‘ㄹ’은 잇몸에 혀를 살짝 대며 소리 내고 음절 끝인 받침에서는 잇몸에 혀를 댄 채 소리 낸다. 한국인들은 이 차이에 따라 ‘랄’을 ral처럼 적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구리’와 ‘임실’은 각각 Guri, Imsil로 적는다.

구리 Guri 임실 Imsil

  종전 표기법에서 s와 sh로 나누어 적던 ‘ㅅ’은 새 표기법에서는 s 한 가지로만 적도록 하였다. 우리말의 ‘ㅅ’은 혀끝을 윗잇몸 가까이에 대고 내는 소리인데 ‘이’ 앞에서는 구개음화된다. 즉 ‘서울’과 ‘신라’의 ‘ㅅ’은 그 소리가 다르다. 이 차이를 외국인들은 비교적 잘 느끼기 때문에 종전 표기법에서는 전자는 s로, 후자는 sh로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ㅅ’의 표기를 둘로 나누지 않기로 하였다. 그 결과 ‘신라’는 Shilla에서 Silla로 바뀌게 되었다.


서울 Seoul 신라[실라] Silla

  ‘ㄱ, ㄷ, ㅂ, ㅈ’을 무성음과 유성음의 구별 없이 g, d, b, j 한 가지로 적음으로써, 격음 ‘ㅋ, ㅌ, ㅍ, ㅊ’ 표기에 k, t, p, ch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종전 표기법에서는 격음을 표기할 때, k, t, p, ch에 어깻점만 붙여서 k’, t’, p’, ch’로 적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방식은 ‘달’과 ‘탈’처럼 우리말에서 분명히 구분되는 말을 tal과 t’al로 적게 되어, 시각적으로 그 차이가 잘 인식되지 못할뿐더러 편의에 따라 어깻점을 생략할 경우 모두 tal로 표기되어 구별이 무너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새 표기법에서는 ‘달’은 dal로 ‘탈’은 tal로 적어 평음과 격음을  분명히 구분하여 적을 수 있게 되었다.
  경음 ‘ㄲ, ㄸ, ㅃ, ㅆ, ㅉ’은 kk, tt, pp, ss, jj으로 글자를 겹쳐 적도록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로마자 사용에서 특이한 방법이다. 그러나 g 계열의 자음과 k 계열의 자음을 각각 평음과 격음에 대응시킨 이상, 그리고 특수 부호를 쓰지 않는 이상 한 개의 자음으로 경음을 표기할 방법은 없다.
  물론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에서 k, t, p가 국어의 경음에 가깝게 소리 나는 점을 들어 경음을 k, t, p 한 글자로 적고, 대신 격음을 kh, th, ph와 같이 적는 방안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격음을 두 개의 문자로 적게 되는 번거로움이 있고, ‘ㅉ’을 표기할 글자가 마땅치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kk, tt, pp 등과 같이 적는 것은, ‘한글 맞춤법’에서 글자를 겹쳐 표기하는 것을 본뜬 방법으로서, 자연스럽게 정착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ㄱ’을 g에 대응시킨 이상 ‘ㄲ’은 gg로 대응시키는 것이 체계적으로 보이나, g, d, b는 보통 유성음을 표기하는 글자이므로 무성음인 경음을 표기하는 데에 적합지 않아서 무성음을 나타내는 글자인 k, t, p를 겹쳐 쓰게 되었다. 그러나 ‘ㅉ’은 ch를 겹쳐 쓸 수는 없어 jj로 표기하였다. 종전 표기법처럼 tch 등과 같이 쓸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반드시 ‘ㅉ’으로 발음을 유도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경음 표기의 체계를 위하여 jj로 결정하였다.

  까치마을 Kkachi maeul  땅끝(지명) Ttangkkeut 떡 tteok       
  뚝섬 Ttukseom 뿌리공원 Ppuri Park 찐빵 jjinppang

3.5. 기타 표기 세칙
  (1) 음운 변화의 표기 방법
  로마자 표기는 ‘표준 발음법’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국어의 모든 음운 변화는 원칙적으로 로마자 표기에 반영되어야 한다. 새 ‘로마자 표기법’에서는 자음 동화와 ㄴ 첨가, ㄹ 첨가, 구개음화는 규칙적으로 표기에 반영하지만, 경음화와 격음화는 반영하지 않는다. 음운 변화의 각 경우를 예와 함께 살펴보자.
  자음 사이에서 동화 작용이 일어나는 경우는 모두 표기에 반영한다. 우리말에서 장애음 ‘ㄱ, ㄷ, ㅂ’은 비음 앞에서 ‘ㅇ, ㄴ, ㅁ’으로 바뀐다. ‘백마[뱅마]’가 그런 경우인데, 음운 변화의 결과에 따라 Baengma로 적는다. ‘ㄹ’이 ‘ㄴ’과 ‘ㄹ’ 이외의 자음 뒤에서 ‘ㄴ’으로 바뀌는 유음의 비음화 현상과 ‘ㄴ’이 ‘ㄹ’의 앞이나 뒤에서 ‘ㄹ’ 소리로 바뀌는 유음화도 표기에 반영한다.

백마[뱅마] Baengma    종로[종노] Jongno      신라[실라] Silla
 
  ‘ㄴ’ 첨가와 ‘ㄹ’ 첨가도 표기에 반영한다. 

학여울[항녀울] Hangnyeoul  물약[물략] mullyak 

  구개음화도 로마자 표기에 반영한다.

해돋이[해도지] haedoji

  격음화와 경음화 현상을 살펴보자. 새 ‘로마자 표기법’에서는 이들을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 발음에 따라 국어를 로마자로 적는 이상, 격음화와 경음화도 모두 표기에 반영하는 것이 체계적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일반인들이 표기법을 이해하여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표기에 반영하지 않기로 하였다.
  우리말의 ‘ㄱ, ㄷ, ㅂ, ㅈ’은 ‘ㅎ’과 만나 격음인 ‘ㅋ, ㅌ, ㅍ, ㅊ’이 된다. 따라서 ‘좋고[조코]’, ‘놓다[노타]’, ‘낳지[나치]’ 등은 소리 나는 대로 joko, nota, nachi 등으로 적는다. 그러나 체언에서는 ‘ㅎ’을 살려 적는다. ‘묵호’를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Muko가 된다. 이때 k는  ‘ㄱ’ 받침이 ‘ㅎ’과 합쳐진 ‘ㅋ’을 나타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묵’의 ‘ㄱ’ 받침을 적은 것으로 오해하여, ‘호’의 ‘ㅎ’이 사라져 버린 것으로 생각하며 거부감을 느낀다. 따라서 ‘ㄱ, ㄷ, ㅂ’ 뒤에 ‘ㅎ’이 따를 경우는 어원 의식을 존중하여 ‘ㅎ’을 살려 적기로 하였다. 결국 격음화 현상은 체언과 용언을 나누어 체언의 경우는 격음화의 결과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 그런데 ‘로마자 표기법’의 주요 표기 대상은 지명이나 인명 등 고유 명사이므로 결과적으로 격음화 현상은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 된다.

용언: 좋고[조코] joko,  놓다[노타] nota  낳지[나치] nachi
  체언: 묵호 Mukho 집현전 Jiphyeonjeon

  경음화 현상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말에서 경음화는 그 음운론적 환경을 기술할 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국어에서 받침 ‘ㄱ, ㄷ, ㅂ’ 뒤에 연결되는 ‘ㄱ, ㄷ, ㅂ, ㅅ, ㅈ’은 규칙적으로 경음으로 변한다. 이러한 경우는 경음화를 로마자 표기에 반영하지 않더라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즉 외국인이 Nakdonggang으로 적힌 ‘낙동강[낙똥강]’을 ‘낙’과 ‘동강’으로 끊어서, 즉 ‘동강’을 경음이 아닌 평음으로 발음하더라도 한국인이 이를 ‘낙동강’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물고기’와 ‘불고기’처럼 동일한 음운 환경에서 경음으로 변하는 것이 규칙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이 말들은 모두 앞말이 ‘ㄹ’로 끝나고 뒷말의 첫소리가 ‘ㄱ’인데, ‘물고기[물꼬기]’의 ‘고기’는 경음화되고 ‘불고기’는 그렇지 않다. 경음화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아 외국인이 경음이 아닌 평음으로 ‘물고기’를 발음할 경우, 한국인이 이를 ‘물고기’로 이해하는 데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결정적으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경음화와 관련하여 표준 발음이 무엇인지 결정되지 않은 예들이 있어 경음화를 표기에 반영할 경우 실제 표기에 어려움이 많다. 예를 들어 ‘당고개’의 경우는 발음이 [당고개]인지 [당꼬개]인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라 표기형이 혼란스러워질 소지가 크다. 이러한 이유로 경음화 현상은 표기에 반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낙동강 Nakdonggang 당고개 Danggogae

  (2) 인명의 표기 방법
  인명은 성과 이름의 순서로 씌어 쓰도록 하였다. 이름의 음절 사이에서 일어나는 음운 변화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고, 이름자는 붙여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이름 사이에 붙임표를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성의 표기는 따로 정하기로 하였다.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등 동양에서는 인명을 성과 이름의 순서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로마자를 주요 표기 수단으로 하는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름을 먼저 쓰고 성을 나중에 쓴다. 서양인들의 이러한 관습을 중시해서 동양인도 로마자로 이름을 쓸 경우에는 이름을 먼저 쓰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일본인은 로마자로 인명 표기를 할 때 이름을 먼저 쓰고, 중국인들은 성을 앞에 쓴다. 중국이나 일본은 이러한 일관된 표기 원칙에 따라 적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 그들의 성과 이름을 혼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을 먼저 쓴다는 규정이 있는데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름을 한 자 한 자 띄어 쓰는 경우가 많아 어떤 것이 성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성과 이름의 순서 문제는 사실상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일관된 원칙을 정해서 지켜 쓰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지 어느 것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는 아니다. 새 표기법에서는 한국어에서의 순서에 따라 성을 먼저, 이름을 나중에 적도록 하였다. 다만, ‘한글 맞춤법’에서는 성과 이름을 붙여 쓰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로마자로는 성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 성과 이름 사이를 띄어 쓰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은 대개 두 자인데,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의미가 있다. 특히 항렬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 각 음절의 음가를 살려 적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이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음운 변화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고, 각 음절의 음가를 살려 적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복남’이라는 이름은 [봉남]으로 발음되지만 Bongnam으로 적지 않고 Boknam으로 적도록 하였다. 이름은 첫음절의 첫 자만 대문자로 적고 뒤 음절과 이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는데, 필요한 경우는 Bok-nam과 같이 붙임표를 써서 음절 구분을 하는 것도 허용하였다.

  한복남 Han Boknam(Han Bok-nam)

  성의 표기는 따로 정하기로 하였으나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성 표기의 경우는 표기법 원칙대로 따르라고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오’, ‘우’ 씨 등 단모음 성씨의 경우는 원칙에 따르면 I, O, U가 되는데 현재 그렇게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로마자 기호로 성씨를 표기하는 것이 낯설고 거부감을 주게 된다. ‘김’이나 ‘박’씨의 경우에도 원칙에 따라 Gim이나 Bak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Kim, Park를 쓰고 있는데, 이것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표기법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혼란을 줄이는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여권이나 신용 카드, 명함 등에 Kim, Park  등으로 써 온 것을 Gim이나 Bak으로 바꾸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부터 새 표기법에 맞는 표기를 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으나, 그러면 가족들 간에 성이 달리 표기되는 경우가 있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성 표기의 경우 어느 정도 관습적인 표기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지금 현재 관습적으로 널리 쓰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며, 관습적 표기의 허용 범위는 어디까지 할 것인지 기준을 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에서는 현재 성 표기 권장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광범한 실태 조사와 여론 수렴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3) 붙임표의 용법
  표기의 기본 원칙에서 밝혔듯이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에서는 로마자 이외의 부호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로마자에 직접 부과되는 반달표와 어깻점을 제거하였지만 로마자 이외의 부호는 모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고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은 바로 이 붙임표 때문이다. 새 ‘로마자 표기법’에서 붙임표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사용된다.

(가) 발음상 혼동할 우려가 있을 때
(나) 인명의 각 음절 사이에
(다) ‘도, 시, 군, 구, 읍, 면, 리, 동’의 행정 구역 단위와 ‘가’ 앞에
(라) 전자법 표기에서 음가 없는 ‘ㅇ’을 표기할 때

  위의 네 가지 경우 중 (가)와 (나)는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필요한 경우에 쓸 수 있다는 허용 사항이고 (다)와 (라)의 경우는 반드시 써야 하는 경우이다.
  새 표기법에서는 한 음운을 나타내기 위해 둘 이상의 로마자 기호를 어울러 쓴 경우가 여럿 있어서 발음상 혼동할 우려가 생겨난다. 모음 중에서 ‘애’, ‘어’, ‘으’, ‘외’는 불가피하게 두 글자를 겹쳐 ae, eo, eu, oe로 쓴다. 그 결과 모음이 겹쳐 나오는 경우에는 발음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서 Haeundae는 ‘해운대’로 읽을 수도 있지만 ‘하은대’로 읽을 수도 있다. ‘하은대’로 읽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해’와 ‘운’ 사이에 붙임표를 넣어 Hae-undae 로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자음의 경우에도 ‘ㅇ’ 받침은 ng로 쓰기 때문에 다음에 모음이 뒤따라 나오는 경우에는 발음상 혼동의 우려가 생긴다. 예를 들어 Sangil은 ‘상일’ 또는 ‘산길’로 읽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Sang-il 또는 San-gil로 붙임표를 이용해서 발음상 혼동을 없앨 수 있도록 하였다.
 
해운대 Hae-undae  상일 Sang-i    산길 San-gil

 이름의 각 음절 사이에는 발음상 혼동의 우려가 없는 경우에라도 각각의 음절을 구분해서 나타내고 싶은 경우에는 붙임표를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이름이 ‘용하’인 경우 Yongha로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두 자를 굳이 따로 구분하고 싶어 하는 경우에는 Yong-ha로 쓸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이 경우에도 붙임표 없이 두 글자를 따로따로 적거나(Yong ha), 이름의 두 번째 음절의 첫 자를 대문자로 적는 것(Yong-Ha)은 허용하지 않는다.
 
민용하 Min Yongha(Min Yong-ha)

  행정 구역 단위 앞에는 붙임표를 넣어 그것이 행정 구역 단위임을 보여 주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양주군’, ‘신창읍’은 각각 Yangju-gun, Sinchang-eup으로 쓰는데, 여기에서 붙임표는 생략할 수 없다. 또한 붙임표 앞뒤에서 일어나는 음운 변화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삼죽면’의 경우 발음은 [삼중면]이 되지만 Samgjung-myeon으로 적지 않고 Samjuk-myeon으로 적는다. ‘리(里)’의 경우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면 표기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는데, 즉 ‘리’앞에 오는 말의 받침이 무엇인지에 따라 ri, ni, li 등으로 달리 적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신대리’는 Sindaeri로 ‘신풍리’는 Sinpungni로, ‘장촌리’는 Jangcholli로 적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리’가 하나의 행정 구역 단위임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발음이 실제와 달라지더라도 -ri로 고정하여 표기하도록 하였다.
  그 밖에 전자법 표기에서 음가 없는 ‘ㅇ’을 나타낼 때에도 붙임표를 쓰도록 하였다. 전자법으로 표기한 것은 쉽게 한글로 복원이 가능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음가 없는 ‘ㅇ’도 따로 표시를 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장치가 없다면 예를 들어 ‘안암’의 경우 Anam으로 표기된 것만을 보고는 그것이 ‘아남’인지 ‘안암’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때 두 번째 음절의 음가 없는 ‘ㅇ’을 붙임표로 표시해 주면 An-am이 되어 그것의 한글 표기가 ‘안암’임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양주군 Yangju-gun  신창읍 Sinchang-eup
삼죽면[삼중면] Samjuk-myeon
신대리 Sindae-ri 신풍리 Sinpung-ri 장촌리 Jangchon-ri
아남  A-nam 안암 An-am




4. 맺음말

  새 ‘로마자 표기법’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표음법 원칙을 따르되 철저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의를 고려한 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인의 시각에서 ‘한글 맞춤법’ 위주의 표기를 한 적도 있지만(1959년~1983년), 대개는 외국 사람들의 편의를 더 많이 고려한 표기법을 사용해 왔다. 특히 1930년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것이어서 오랜 세월을 두고도 표기가 통일되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반면에 1959년에 만들어져 1983년까지 사용되었던 문교부 표기법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체계였으나 발음을 보여 주지 못해 성공적으로 정착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은 표음법을 위주로 하되 우리말의 특성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우리 일반 언중이 쉽게 이해하고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새 ‘로마자 표기법’은 표준 발음에 따라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많은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표기법 전체의 체계를 어그러뜨리는, 그래서 언어학자들에게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예외를 둔 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표기법은 소수의 전문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 모두 익혀서 널리 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실용적인 면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새 표기법이 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체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국민이 쉽게 익혀 쓸 수 있는 체계라는 점에서 현재의 혼란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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